말뜻을 넘겨 짚는 버릇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잠깐 바느질에 확 꽂혔었다. 지금의 지인들은 나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취미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에 엄마가 수예점을 하셨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위에 굴러 다니는 목공단 자투리, 레이스, 코바늘, 대바늘 따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보니 나중에는 혼자서 책을 보고 고무단뜨기 코를 잡을 정도의 뜨개질, 바느질 신동이 됐다.
그 무렵 만든 작은 주머니에 매직 마커로 '생리용품'이라고 썼다. 엄마가 그걸 보고 기절초풍하면서 생리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 집은 딸이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여자의 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절대로' 아니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종종 5, 6살로 오해를 받을 만큼 또래보다 왜소했다. 그런 꼬맹이가 웬 생리용품? 난 사실 생리라는 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순리' 같은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했다. 그래서 손수건, 실과 바늘, 휴대용 티슈 정도의 자질구레한 소품을 넣는 주머니로 쓰려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생리용품'이라는 말을 떡하니 써먹었던 것이다.
마지노선. 난 옛날에 이게 marginal의 복수형 marginaux인 줄 알았다. 기가 막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한계선'이라는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난 마지노선이 뭔지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중에 마지노(Maginot)가 사람 이름이라는 걸 알고 머리가 띵했다.
반면에 mocassin은 처음부터 이 단어로 배웠다. 마침 얼마 전에 누가 "아니, 모카신의 마지막 '신'은 우리말 아니었어?"라는 게 아닌가. 오호호, 나는 (속으로) 마구 비웃어줄 수 있었다.
torrent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 교수님은 우스갯소리로 "여러분, 불어의 '또랑'은 우리말에서도 '또랑'이에요"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농담이 강렬한 인상을 오래 남긴 탓에 거치적거릴 때가 몇 번 있었다. torrent과 '도랑'은 규모와 느낌이 다르다. 평화로이 흐르는 실개천을 상상했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한바탕 휩쓸고 가는 급류였다는.
스페인어를 두 달 배우고 석 달을 쉬었다가-벨리나 여름방학, 밀린 원고, 원하는 시간대의 강의 폐지-다시 나가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새로울 수가. 간단한 작문을 했는데 전치사 a를 전부 à라고 해놨다. 악상 그라브를 찍지 않으면 볼일 보고 뒤처리를 안 한 기분이다. 불어를 알고 있으니 확실히 문법 쪽은 이해가 빠른데 불어를 알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소하지만 불편한 착각들도 만만치 않다. 어떤 면에서 나는 불어를 좀 더 명증하게 이해하고 싶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명증'은 요원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