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데이

빼빼로데이를 겨냥한 것인지, 요즘 나오는 빼빼로 상자에는 간단한 메시지를 적을 수 있는 칸이 있더라.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를 좋아하는 벨리나가 요런 걸 그냥 넘길 리 없다.


BEFORE



AFTER


by avril | 2011/11/11 17:25 | Belina | 트랙백 | 덧글(7)
불편한 착각

말뜻을 넘겨 짚는 버릇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잠깐 바느질에 확 꽂혔었다. 지금의 지인들은 나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 취미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에 엄마가 수예점을 하셨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주위에 굴러 다니는 목공단 자투리, 레이스, 코바늘, 대바늘 따위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보니 나중에는 혼자서 책을 보고 고무단뜨기 코를 잡을 정도의 신동이 됐다.
그때 만든 작은 주머니에 매직으로 '생리용품'이라고 써넣었다. 엄마가 그걸 보고 기절초풍하면서 생리가 뭔지 아느냐고 물었다. 우리 집은 딸이 어릴 때부터 엄마가 여자의 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는 그런 분위기가 '절대로' 아니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나는 종종 5, 6살로 오해를 받을 만큼 또래보다 왜소했다. 그런 꼬맹이가 웬 생리용품? 난 사실 생리라는 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순리' 같은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했다. 그래서 손수건, 실과 바늘, 휴대용 티슈 정도의 자질구레한 소품을 넣는 주머니로 쓰려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생리용품'이라는 말을 떡하니 써먹었던 것이다.

마지노선. 난 옛날에 이게 marginal의 복수형 marginaux인 줄 알았다. 기가 막히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한계선'이라는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난 마지노선이 뭔지 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중에 마지노(Maginot)가 사람 이름이라는 걸 알고 머리가 띵했다.

반면에 mocassin은 처음부터 이 단어로 배웠다. 마침 얼마 전에 누가 "아니, 모카신의 마지막 '신'은 우리말 아니었어?"라는 게 아닌가. 오호호, 나는 (속으로) 마구 비웃어줄 수 있었다.

torrent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 교수님은 우스갯소리로 "여러분, 불어의 또랑은 우리말에서도 또랑이에요"라고 하셨다. 그러나 이 농담이 강렬한 인상을 오래 남긴 탓에 거치적거릴 때가 몇 번 있었다. torrent과 '도랑'은 규모와 느낌이 다르다. 평화로이 흐르는 실개천을 상상했는데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한바탕 휩쓸고 가는 급류였다는.

스페인어를 두 달 배우고 석 달을 쉬었다가-벨리나 여름방학, 밀린 원고, 원하는 시간대의 강의 폐지-다시 나가고 있다. 어쩌면 이렇게 새로울 수가. 간단한 작문을 했는데 전치사 a를 전부 à라고 해놨다. 악상 그라브를 찍지 않으면 볼일 보고 뒤처리를 안 한 기분이다. 불어를 알고 있으니 확실히 문법 쪽은 이해가 빠른데 불어를 알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소하지만 불편한 착각들도 만만치 않다. 어떤 면에서 나는 불어를 좀 더 명증하게 이해하고 싶어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명증'은 요원해 보인다.

by avril | 2011/10/28 10:32 | 트랙백 | 덧글(2)
소아병동 입원기
얼마 전에 벨리나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원이라는 걸 했다. 가벼운 폐렴이라서 3박 4일 입원으로 선방했는데 그 며칠 동안 느낀 바가 있었다.

하나. 아이가 궁지에 물리니까 독한 말을 한다. (치료를 잘 받아야 한다고 타이르는 엄마에게) "치료 받느니 차라리 죽을래!" 그러더니 조금 살 만해지자 "엄마는 내 사랑, 난 엄마의 껌딱지, 우리는 진정한 우정"이란다(내가 네 친구냐?).

둘. 내 딸이 '마이 페이스' 형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참을성이 없을 줄은 몰랐다. 자기 손으로 주사 바늘을 빼고 집에 가겠다고 진상을 떨 줄이야. 폐렴으로 아픈 것보다 기싸움 하느라 병이 나겠더라...;;

셋. 다음에 또 입원할 일이 있으면 가급적 일반병동으로 가련다. 만 5세 이하 아이들 다섯 명과 그 엄마 다섯 명이 한 방을 쓰는 소아병동의 밤은 정녕 지옥이었다(벨리나가 제일 큰 아이, 셋은 완전 아기들). 애 하나가 자면 다른 애가 운다. 그 애가 자면 또 다른 애가 운다. 기적적으로 모두가 잠들었다 싶으면 간호사가 들어와 호흡기치료를 시킨다(밤중이고 새벽이고 상관없이 3시간 간격).
소아병동에서 사흘 밤을 보냈더니 잠에 관한 한 이불 스무 장 아래 콩 한 알을 그냥 못 넘기는 나조차도 순식간에 잠드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그런 경험은 수면내시경 받으면서 마취약이 몸에 들어올 때밖에 못해봤다.

넷. 어차피 입원한 거, 잘하면 추석은 그냥 건너뛸 수 있겠구나라는 간사한 계산이 있었는데 추석 전전날 퇴원하고 다음날 허리가 끊어지도록 전을 부쳤다.

다섯. 일상은 평온하고 견딜 만한 것이었다. 애는 아프지만 않아도 엄마를 도와주는 거다.

여섯. 그래서 추석 이후부터 비장할 정도로 바쁜데 딴짓은 꼭 이럴 때 하고 싶더라.
by avril | 2011/09/25 22:09 | Belina | 트랙백 | 덧글(10)
경주와 안동
우기(?)가 어느 정도 소강 상태에 들어간 늦여름, 우리 가족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들고 경주에 내려갔다.

대부분의 서울 출신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첫 번째 경주행은 고교시절 수학여행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에 단짝친구들과 다시 경주를 찾았다. 지금도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사학과 출신이라서 답사 코스라든가 그런 쪽으로 종종 끌려다니곤 했다. 20대 후반의 말만 한 아가씨 셋이서 겁도 없이 히치하이크를 하고 다녔던 기억이 남는다(경주는 생각보다 택시를 잡기가 힘들었다). 다시 10년이 흘렀고 아가씨는 아줌마가 되어(;;) 가족들과 경주를 방문한다. 이제 쌍둥이엄마가 된 그 친구에게 경주에 갈 거라고 했더니 여행 둘째날인가, "경주는 여전하더냐"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평소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고 금방금방 지워버리는 편인데 그 메시지는 오랫동안 지우지 않았다. 그래, 우리가 언제 다시 경주에 함께 갈 수 있을까? 아이들이 "이제 엄마 따라다니기 싫어요"라고 말할 40대 후반쯤?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늦은 점심부터 해결했다. 경주시가 향토음식으로 밀고 있는 '곤달비비빔밥'이라는 메뉴를 택했다. 곤달비라는 단어가 예뻐서 어떤 나물일까 궁금했는데 나도 가끔 먹어본 곰취나물이었다. 상차림이 단출하고(개인적으로 상다리가 부러져라 푸짐하게 차려 나오는 밥상은 별로...;;) 고추장이 아니라 짜지 않은 된장소스에 비벼 먹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벨리나는 '별보는 집(첨성대)'을 가장 좋아했다. 마침 계림과 석빙고 가는 길에도 꽃이 예쁘게 피었다.

벨리나가 찍어준 엄마 사진.

안압지는 야경이 좋다고 해서 일부러 저녁에 갔는데 내가 보기엔 조명이 과해서 기괴했다. 다음에는 낮에 둘러보고 싶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고 찰보리빵을 사들고 돌아온 둘째날 오후부터는 비가 내리 퍼부었다. 하지만 두 김씨를 재워놓고 호텔 객실에서 비 내리는 보문호를 바라보며 책을 읽으니 비로소 '내게 강 같은 평화'가 밀려왔다.

잠시 비가 갠 초저녁 하늘, 예쁜 무지개가 떴다.

셋째 날도 아침부터 비, 비, 비. 올 여름은 비 내린 기억밖에 없는 것 같다.
전국 날씨를 검색해보니 안동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해서 예정에 없던 하회마을로 달렸다.

벨리나를 데리고 부용대에 올라가기가 좀 힘들었지만 확실히 올라간 보람은 있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제일 못 올라갔다. 벨리나는 산도 잘 타고, 그네도 잘 타고, 탈춤도 덩실덩실 따라 추고, 차에서 쉴 새 없이 노래 부르고, 도무지 지치지를 않았다.
 
비록 혼자 있고 싶어 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은 인간이긴 하지만 해가 갈수록 김 달인과 벨리나가 나의 가장 좋은 여행 파트너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이런 즐거움을 많이 누려야 할 텐데... 뾰족이 잘 하는 것도 없으면서 왜 이토록 마음의 여유가 없는지 모르겠다(오, 너무나 조급한 당신!). 가을에 고창 선운사에 가고 싶다만, 잔뜩 쌓인 숙제를 생각하면 꿈같은 얘기.
 
기억해두고 싶은 한 컷.

by avril | 2011/09/19 11:52 | Journal extime | 트랙백 | 덧글(8)
두 얼굴의 책
난생 처음 칙릿을 작업하는 중.
칙릿이 쉬운 책이라고 얕잡아본 적은 없다. 초짜 때는 겁없이 쏟아내기도 하고 그랬지만, 지금은 어떤 책도 만만히 보지 않는다. 그래도 인문서나 과학서보다는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이따금 배꼽 잡고 웃을 수 있겠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어마어마한 착각이었다. 이 고유명사들의 향연! 브랜드나 제품명에 무심한 나에겐 복병도 이런 복병이 없다(난 쇼핑을 몹시 귀찮아하고 명품이나 브랜드도 잘 모르는 인간. 다른 번역가들이 '간지' 날리는 맥북에어를 쓰는 이때에 30만원짜리 중국산 넷북으로 일하는 인간. 까탈스럽게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사실은 무취향에 미맹(味盲). 그나마 물건 구경 좋아하고 여행과 맛집을 낙으로 삼는 남편을 만나서 많이 개선된 게 이 정도).
그리하여... 한 줄 번역해놓고 영국의 '보디폼'이 목욕용품이 아니라 생리대 브랜드라는 걸 알아내고, 또 한 줄 번역한 다음에 '니콜 파히'가 오트쿠튀르 브랜드인지 중저가 의류브랜드인지 확인하고... 작업도서보다 구글 웹페이지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다. 성냥개비로 다보탑을 쌓는 기분.
올해 가을에 국내 개봉할 로맨틱코미디의 원작소설이기 때문에 좀 더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라 제시카 파커와 피어스 브로스넌이 주연을 맡는다고. 미혼남녀들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워킹맘 스토리가 큰 줄기라서 내 또래 주부들도 공감하면서 볼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가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무튼 개봉 일정에 맞춰 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은 또 다른 압박... ;;
by avril | 2011/06/18 09:01 | Journal extim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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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리나, 내 삶의 껌딱지요, 내 가슴의 핫팩. 나의 보물, 나의 족쇄. 벨-리-나. 뽀뽀하듯 맞부딪치는 입술과 가볍게 입천장을 튕겨주는 혀끝과 마침내 터지는 환희의 외침. 벨. 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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